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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아비를 향한 여인의 정절은 비록 삼강오륜에는 들어있지 않아 덧글 0 | 조회 37 | 2019-09-20 18:51:05
서동연  
한 지아비를 향한 여인의 정절은 비록 삼강오륜에는 들어있지 않아도 그 어떤 것보다 엄중하게 요구되던 미덕이었다. 그러나 그 요구는 아주 세련되고기교적인 형태를 띠었다. 물론 여기서도 위반은 엄한처벌이 있었으나 그보다 더 자주 활용된 것은 포상을통한 장려였다. 마을마다 문중마다 서 있었던열녀문과 비각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원래 현일이 그 상소를 올릴 때는 인현왕후의 일을입에 올리는 것조차 역률로 다스리겠다는 숙종의 엄명이 살아 있던 시절이었다. 현일은 그 전에도여러번 인현왕후를 위해 상소를 올렸으나 번번히 승정원에서 기각당하다가 그 해 여러 재이로 언로가 열린틈을 타 그 상소를 올릴 수가 있었다. 비록폐출된왕비이지만 육례를 갖춰 맞은 정비인 만큼 별궁으로옮겨 신변의 안전을 지킴과 아울러 후하게 대해줄 것을 임금께 청한 내용이었다.하지만 세상이 어지럽기는 이 땅도 마찬가지여서때는 후삼국이 한창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던 무렵이었다. 마침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안동부근에서 한바탕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때 태사공께서는 안동의 다른 호족 김선평, 권행과 함께 더불어 왕태조를 도와 견훤을 크게 무찔렀다.감격한왕태조는 세 사람을 나란히 태사로 봉하니 이가 곧안동의 삼태사이다. 그 뒤로 삼태사의 후^36^예들은안동을 본관으로 삼고 인근에 흩어져 번성을 누렸다.하지만 내가 못 견딘 것은 숨어 사는 외로움이나넉넉잖은 살이의 고단함이 아니었다. 비록 대의가 아름답다 해도 종내 아무 남기는 것 없이 군자의 삶이허비되는 게 무엇보다도 민망하고 안타까웠다. 수비산으로 든 지 몇 해 뒤 나는 마침내 군자께 아뢰었다.설 때 한쪽 발에만 의지하지 아니하며또 나의 상화법에는 이런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두분 시아주버님과 군자의 광산 김씨의 참상에 손윗동서 무안 박씨의 순절에 더해 집안은 거의 상중이나다름없었다. 이때에 군자께서 시아버님을 대신해 집안을 돌보고 계셨으나 원래가 학문에만 여념하던 서생인데다 상처한 시름이 있으니 그 가독이 세심할 리없었다.하
서울 가 다시 벼슬 살기는 부끄러움일 뿐이네나라골로 돌아오신 공이 먼저 하신일은 이여송이끊어버린 인근의 지맥을 되살리신 것이다. 공은 곡식과 돈을 아끼지 않고 사람을 풀어 이여송이 박았다는사기말뚝을 뽑고 흙과 돌을 져날라 잘라버린 혈을 잇게 하셨다. 그리고 어떤 곳은 물길을 돌리고 언덕을높여 비보를 대신하기도 하셨다.거기다가 이 시대의 은근한 추세가 되어 있는 젊은이들의 출산 기피가 그런 관념적인 배경을 거지고 있는지는 실로 의심스럽다. 드러나는 현상을 감각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시대의 속성에 너무나도 어울리지않는 까닭이다. 그보다는 좀 더 실질적이고 드러나는원인을 찾아보는 게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하기야 이 새로운 선택에 대해서도 그것은 선택이아니라 순응이었을 뿐이라고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길로는 더 갈 수가 없어 시대가 허용하는 길로 갔을 뿐이라고, 잘해야 현실과 타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하기야 아직 너희 많은 아내들에게 전 시대의 억압과 질곡이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끝났다하더라도 그것은 남성의 폭력으로 생긴 눈두덩이의피명이 겨우 삭고, 마를 줄 모르던 너희의 눈물이 이제 말라간다는 정도이다. 너희 대부분은 아직 제대로난 새 길을 출발하지도 못했는데 어쩌다 앞서게 된천방지축의 동성 몇이 한 실수를 너희 모두의 잘못처럼 꾸짖는 내가 가홋할지도 모르겠다.이제와서 돌이켜보아도 내가 군자를 그같이 자리매김한 것은 자랑할 만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귀하다는것은 군자를 향한 내 우러름과 사모함을 간략하게 드러낸 말이다. 손님은 비록 가깝고 익숙하더라도 예를잃지않으리라는 내 다짐의 표현이다.시댁이 있는 나랏골은 친정인 춘파에서 가맛길로이틀이 걸렸다. 나랏골은 영해부 인상동에서 인하동에 걸친 마을 이름으로 그곳이 나랏골로 불리게 된데는 두 가지 풀이가 있다. 하나는 땅의 생김이 학이날아가는 형국과 같다 하여 나ㄹ^5,3456^(날개)골으로 불리다가 점차 나라골로 변했다고 한다.나라골이 한자로는 익동 혹은 비개동인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나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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